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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21.10.15

가장 짧은 문장으로 가장 긴 여운을 주는 詩! 시는 ‘영혼의 비타민’이자 ‘마음을 울리는 악기’입니다. 영감의 원천, 아이디어의 보고이기도 합니다. 눈 밝은 CEO는 시에서 ‘생각의 창’을 발견합니다. 한국경제 논설위원인 고두현 시인이 금요일 아침마다 ‘영혼의 비타민’을 배달합니다.
고두현 시인(한경 논설위원 / kdh@hankyung.com)


술이나 마시게(不如來飮酒)
 

먼지 자욱한 세상에 얽혀
힘겹게 마음 쓸 일 어디 있겠는가
달팽이 뿔 위에서 서로 싸운들
얻어야 한 가닥 쇠털뿐인걸
잠시 분노의 불길을 끄고
웃음 속 칼 가는 것도 그치고
차라리 여기 와 술이나 마시며
편히 앉아 도도히 취하느니만 못하리. 

* 백거이(白居易, 772~846) : 당나라 시인.  

 1200여 년 전에 백거이가 쓴 시입니다. 요즘 나라 꼴이 말이 아닌데,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이죠?

 먼지 자욱한 ‘홍진의 세상’은 늘 인간이 만듭니다. 간사하고 야비한 사람일수록 더 그렇습니다. 웃음으로 상대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고 뒤로는 제 잇속을 챙기면서 결국엔 비수를 드러내지요. 작은 권력이라도 잡으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분탕질을 칩니다.

 황제까지 협박…엄청난 뇌물 챙겨
 당나라 고종 때 이의부(李義府)도 그런 인물이었습니다. 그는 고종이 아버지의 후궁이던 무씨(武氏·훗날 측천무후)를 황후로 삼으려 할 때 앞장서 찬동하며 큰 신임을 얻었습니다. 속으로는 음험하면서도 겉으로 겸손한 척하며 미소를 잃지 않는 캐릭터였지요. 머잖아 본색을 드러낸 그는 정적들을 온갖 죄로 얽어 숙청했습니다.

 사형수 중에 미녀가 있는 걸 알고는 간수에게 명해 석방시킨 뒤 첩으로 삼기도 했지요. 사법부 책임자가 이를 알고 상소했지만 두려움에 떨던 간수만 자살하고 그는 무사했습니다. 이를 다시 비판하던 어사 왕의방(王義方)은 먼 곳으로 좌천됐고요.

 이의부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습니다. 관직을 원하거나 출세하려는 이들이 그의 집으로 밤낮없이 몰려들었지요. 보다 못한 고종이 그를 불러 경고하자 되레 “누가 그런 일을 고했습니까”라고 반문하며 날을 세웠습니다. 고종은 그가 또 보복에 나설까 봐 “짐이 그렇게 생각할 뿐”이라고 얼버무렸죠. 
 
 어느 날 이의부는 새 인사명부를 보고 은밀히 명단을 베껴왔습니다. 아들을 시켜 승진 후보들을 부르게 한 뒤 “출세하고 싶지 않으냐”고 부추기며 엄청난 뇌물을 받아 챙겼습니다. 며칠 후 발표된 인사에서 뇌물 준 사람들은 모두 승진했지요.

 이를 알게 된 대신들이 들고일어나 “기밀을 누설하고 황제의 인사권을 돈으로 팔았다”며 강한 처벌을 요구했습니다. 고종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죠.

 이들 부자에게 유배령이 떨어지자 온 국민이 환호했습니다. 몇 년 뒤 대사면 때 이의부는 권토중래를 노렸지만 유배 중인 자는 예외라는 소식을 듣고 실의에 빠졌다가 결국 병을 얻어 죽었지요.

 ‘권력의 마약’에 취하면 결국 자멸
 100여 년 뒤 백거이는 ‘천가도(天可度)’에서 이를 언급하며 ‘그대는 이의부 무리가 잘 웃는 걸 보았는가/ 웃음 속에 감춘 칼로 몰래 사람을 죽인다네(君不見李義府之輩笑欣欣, 笑中有刀潛殺人)’라고 했습니다. 여기에서 ‘소중유도(笑中有刀: 웃음 속에 칼이 들어 있다)’라는 고사성어가 >>자세히 보기 

 고두현 시인·한국경제 논설위원 :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. 시집 『늦게 온 소포』, 『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』, 『달의 뒷면을 보다』 등 출간.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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